
원형탈모 치료로 머리가 다시 자랐다면 약을 끊어도 될까.
중증 원형탈모 치료에서는 어렵게 모발이 회복되더라도 치료를 중단하면 다시 탈모가 진행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기존 치료제와 다른 방식으로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새로운 치료제 후보에서 치료 중단 후에도 모발 회복 효과가 이어지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 바이오제약사 넥타 테라퓨틱스(Nektar Therapeutics)는 지난 10월 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2026 유럽피부과학·성병학회(EADV) 연례학술대회에서 원형탈모 치료제 후보 ‘레즈펙(REZPEG, rezpegaldesleukin)’의 글로벌 2b상 REZOLVE-AA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발표에는 52주 치료 결과뿐 아니라 치료를 중단한 이후 6개월 동안 환자들의 모발 상태를 추적한 결과가 포함됐다.
원형탈모는 우리 몸을 보호해야 할 면역체계가 모낭을 공격하면서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현재 중증 원형탈모 치료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약물이 바리시티닙과 같은 JAK 억제제다.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모낭을 공격하는 면역세포를 하나의 ‘공격부대’라고 생각해보자.
공격부대가 계속 싸우려면 서로 신호를 주고받아야 한다. JAK은 이러한 면역 신호가 세포 안으로 전달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리시티닙은 이 신호 전달을 차단한다.
쉽게 말하면 공격부대가 사용하는 ‘통신망’을 방해해 모낭을 향한 공격을 약화시키는 방식이다.
실제로 바리시티닙 치료로 모발이 회복된 중증 원형탈모 환자가 약을 중단했을 때 시간이 지나면서 상당수가 치료 효과를 잃었다는 연구도 있다. BRAVE-AA1 연구에서는 바리시티닙을 중단한 환자의 치료 효과 소실이 초기에는 적었지만 장기 추적에서는 80% 이상으로 증가했다.
레즈펙의 접근법은 다르다.
우리 면역체계에는 공격하는 역할을 하는 세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도한 면역반응을 억제하고 조절하는 ‘조절 T세포(Treg)’도 존재한다.
쉽게 말하면 공격부대를 통제하는 ‘감독관’과 비슷한 역할이다.
레즈펙은 IL-2 수용체를 이용해 이 조절 T세포를 선택적으로 늘리고 활성화하도록 설계된 생물학적 치료제다.
즉 공격부대의 통신을 직접 끊기보다는 과도한 공격을 통제하는 감독관을 늘려 면역체계의 균형을 되찾도록 하는 새로운 접근이다.

레즈펙은 먹는 약이 아니라 피하주사제로 개발되고 있다.
이번 REZOLVE-AA 2b상에는 중증 또는 매우 중증 원형탈모 환자들이 참여했으며, 레즈펙은 18μg/kg 또는 24μg/kg 용량으로 2주에 한 번 투여됐다.
연구 초기에는 총 92명의 환자가 참여했으며, 36주 치료 후 조건을 충족한 일부 환자들은 16주 연장시험에 참여해 최대 52주까지 치료를 받았다.
이번 EADV 발표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치료가 끝난 다음이다.
52주 치료를 마친 환자 가운데 두피의 80% 이상에서 모발이 회복된 상태, 즉 SALT 점수 20 이하에 도달한 환자들을 치료 중단 후에도 추적했다.
평가 가능한 환자는 8명이었다.
치료를 중단하고 4개월이 지난 뒤에는 8명 가운데 6명, 75%가 두피 모발 80% 이상 회복 상태를 유지했다.
6개월 뒤에도 8명 가운데 5명, 63%가 같은 상태를 유지했다.
더 흥미로운 결과도 나타났다.
두피의 90% 이상에서 모발이 회복된 SALT 10 이하 환자의 비율은 52주 치료가 끝났을 당시 7%였다.
그런데 치료를 중단하고 6개월이 지난 시점에는 이 비율이 19%로 높아졌다.
약을 끊은 이후에도 일부 환자에서는 모발 회복이 더 진행됐다는 의미다.
이번 결과만으로 레즈펙을 치료하다 중단해도 원형탈모가 재발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특히 치료 중단 후 효과 지속성을 평가할 수 있었던 환자가 8명에 불과하다는 점은 이번 결과를 해석할 때 고려해야 한다.
또 치료 중단 후 효과가 이어진 이유가 조절 T세포의 증가와 활성화가 장기간 유지됐기 때문인지도 아직 확인된 것은 아니다.
현재 확인된 것은 레즈펙으로 52주간 치료한 뒤 일부 환자에서 치료를 중단해도 모발 회복 효과가 6개월 동안 유지됐고, 일부에서는 모발 회복이 더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결과가 많은 환자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나는지는 대규모 3상 시험에서 확인해야 한다.
넥타는 레즈펙의 원형탈모 3상 시험 ‘ZENITH-AA’를 2027년 초 시작할 계획이다.
중증 또는 매우 중증 원형탈모 환자 약 8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며, 주요 평가기준은 52주째 SALT 점수 20 이하 도달 여부다.
회사 측은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1년간 2주 간격으로 치료해 충분한 모발 회복을 보인 환자에서 이후 월 1회 또는 3개월에 한 번으로 투여 간격을 늘리는 방식도 향후 연구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이는 현재 확정된 치료법이 아니라 추가 임상시험에서 평가해야 할 가능성이다.
원형탈모 치료에서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는 ‘머리가 다시 난 뒤에도 치료를 계속해야 하는가’다.
레즈펙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기존 JAK 억제제처럼 면역 공격 신호를 차단하는 것과 달리 과도한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세포 자체를 늘리는 새로운 접근법이 실제 환자에서 가능성을 보였고, 치료를 중단한 이후에도 일부 환자의 모발 회복이 이어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27년 시작될 3상 시험에서는 레즈펙의 모발 회복 효과뿐 아니라 이러한 ‘치료 중단 후 지속성’이 더 많은 환자에서도 확인될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최영훈 기자(medcho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