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가 들면서 피부뿐 아니라 모발을 만드는 모낭과 주변 세포도 노화한다. 최근에는 모낭의 세포노화를 새로운 탈모치료 표적으로 보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이미지=AI 생성)
나이가 들면서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숱이 줄어드는 이른바 ‘노화탈모’.
지금까지 탈모치료는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줄이거나 모발 성장을 촉진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모낭을 구성하는 세포의 ‘노화’ 자체를 새로운 탈모치료 대상으로 보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제14차 세계모발학회(WCHR 2026)에서도 모낭의 노화와 노화세포에 관한 연구들이 발표됐다.
아직 초기 연구 단계지만 노화세포를 제거해 모발 성장을 유도하거나 세포노화로 인한 모낭의 기능 저하를 막으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모낭의 노화’가 새로운 탈모 연구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화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후보물질을 실제 탈모 환자에게 적용하려는 임상시험도 시작된다.
미국 바이오기업 루베도 라이프 사이언스(Rubedo Life Sciences)는 지난 16일 후보물질 ‘RLS-1496’을 남녀 안드로겐성 탈모 환자에게 적용하는 임상시험을 오는 10월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RLS-1496은 기존 탈모약처럼 DHT를 낮추는 방식이 아니라 노화되고 기능이 떨어진 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다.
루베도는 원래 탈모치료제를 전문적으로 개발해온 회사가 아니다.
노화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피부노화와 건선, 아토피피부염, 광선각화증 등을 연구해왔으며 이번에 그 연구 영역을 탈모까지 넓혔다.
회사 측은 안드로겐성 탈모 남성에게서 얻은 사람 모낭을 이용한 실험에서 RLS-1496을 처리한 모낭의 성장이 증가하는 결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는 실제 탈모 환자가 약을 사용해 머리카락이 자랐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에게서 분리한 모낭을 이용한 실험 결과다.
실제 탈모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지는 오는 10월 시작되는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초기 결과는 2027년 상반기 공개될 예정이다.
피부가 나이를 먹듯 모발을 만들어내는 모낭도 나이가 들면서 변한다.
젊었을 때보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성장 능력이 떨어지거나 전체적인 모발 밀도가 감소할 수 있다.
이를 흔히 노화탈모라고 부르며 의학적으로는 ‘노화성 탈모(senescent alopecia)’라는 개념이 사용된다.
올해 국제학술지 ‘Dermatology and Therapy’에 발표된 모발 노화에 관한 전문가 합의에서도 노화성 탈모를 나이가 들면서 머리 전체에서 모발이 가늘어지고 감소하는 형태로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변화에 모낭을 구성하는 세포의 노화와 기능 저하 등이 관여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화탈모와 흔히 말하는 남성형 탈모는 다른 것일까.
실제로는 명확하게 구분하기 쉽지 않다.
특히 중년 이후에는 오랫동안 진행된 안드로겐성 탈모와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모발 감소가 함께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60대 남성의 머리카락이 전체적으로 가늘어졌다면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진행된 탈모인지, 모낭 자체의 노화 때문인지 또는 두 가지가 함께 영향을 미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올해 발표된 전문가 합의에서도 노화성 탈모와 안드로겐성 탈모가 서로 겹칠 수 있어 명확한 구분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결국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탈모에는 기존에 알려진 남성호르몬의 영향뿐 아니라 모낭 자체의 노화가 함께 관여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노화세포를 겨냥하는 치료라면 노화탈모에도 사용할 수 있을까.
가능성을 연구해볼 수는 있지만 아직 답을 내리기는 이르다.
RLS-1496이 이번에 임상시험을 시작하는 대상은 노화탈모 환자가 아니라 남녀 안드로겐성 탈모 환자다. 노화탈모에 대한 치료 효과가 확인된 것도 아니다.
따라서 현재 RLS-1496을 ‘노화탈모 치료제’라고 부를 수는 없다.
다만 세계모발학회를 비롯한 최근 연구에서 모낭의 노화와 노화세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이제는 이러한 개념을 실제 탈모치료 후보물질에 적용하려는 단계까지 연구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현재 남성형 탈모치료에는 피나스테리드와 두타스테리드 같은 약물이 사용되고 있으며 미녹시딜 역시 대표적인 탈모치료제다.
반면 노화탈모 자체에 대해서는 아직 치료방법이 명확하게 확립돼 있지 않다.
올해 발표된 전문가 합의에서는 미녹시딜이 노화에 따른 모발 감소에 도움이 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였지만 다른 치료법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번 RLS-1496 연구 역시 기존 탈모약을 대체할 새로운 치료제가 곧 나온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탈모 연구의 범위가 DHT 억제와 모발 성장 촉진을 넘어 ‘모낭은 왜 늙는가’, ‘노화된 모낭의 기능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가’라는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RLS-1496의 모낭 연구 결과는 오는 10월 1일부터 3일까지 미국 하버드대에서 열리는 국제 장수과학 학회 ‘Aging Research & Drug Discovery(ARDD) 2026’에서도 발표될 예정이다.
노화세포를 겨냥하는 새로운 접근법이 실제 탈모 환자의 모발에서도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지 향후 임상 결과가 주목된다.
최영훈 기자(medcho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