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겉으로 보이는 것은 모발의 소실이지만, 원형탈모는 자가면역 기전이 핵심인 질환이다.
‘탈모’라는 명칭이 질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진=AI 이미지
한국원형탈모환우회 주현재 회장을 과거 인터뷰했을 때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전두탈모로 머리카락을 잃은 자신이 지나가자 어린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대머리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아이들은 눈앞에 보이는 모습을 자신들이 알고 있는 가장 가까운 말로 표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짧은 일화는 원형탈모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을 생각하게 한다.
머리카락이 없으니 ‘대머리’이고, 머리카락이 빠졌으니 ‘탈모’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원형탈모라는 질환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탈모’라는 단어는 주로 남성형 탈모나 여성형 탈모, 노화에 따른 모발 감소 등과 함께 사용돼 왔다.
M자 이마, 정수리 탈모, 대머리 같은 표현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탈모 샴푸, 탈모 영양제, 모발이식 등 미용·관리 영역에서도 워낙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단어다.
물론 남성형·여성형 탈모 역시 의학적으로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며, 이를 가볍게 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성격이 상당히 다른 원형탈모까지 같은 ‘탈모’라는 언어 안에서 받아들여지면서 질환의 특성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주현재 회장도 2022년 언론 인터뷰에서 ‘탈모’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남성형 대머리를 생각하기 쉽다며 원형탈모가 일반적인 남성형 탈모와 구별돼 인식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강조한 바 있다.
실제 대한모발학회 역시 원형탈모를 단순한 미용 문제가 아니라 의학적인 질병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원형탈모는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면역세포가 자신의 모낭을 공격하면서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처음에는 동전 크기의 탈모반 하나로 시작할 수도 있지만 여러 부위로 확대될 수 있고, 심한 경우 두피 모발 전체를 잃는 전두탈모나 신체의 다른 털까지 소실되는 전신탈모로 진행하기도 한다.
치료 역시 일반적인 남성형 탈모와 다르다.
최근에는 비정상적인 면역반응에 관여하는 신호 경로를 억제하는 JAK 억제제가 중증 원형탈모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2026년 7월부터는 바리시티닙 성분의 올루미언트가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성인 중증 원형탈모 환자에게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질환을 이해하는 의학도 달라졌고 치료 방법도 발전했다.
그런데 우리가 부르는 이름은 여전히 ‘원형탈모’다.
여기서 한번 일반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원형탈모를 경험한 적도 없고 주변에 환자도 없는 사람이 뉴스에서 ‘중증 원형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자가면역질환을 먼저 떠올릴까.
아니면 ‘머리가 아주 많이 빠진 사람에게 탈모약을 보험으로 지원해 준다’고 생각할까.
현재 우리나라 일반 국민이 원형탈모를 어느 정도 자가면역질환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직접 조사한 충분한 자료는 찾기 어렵다. 따라서 사람들이 모두 원형탈모를 대머리로 오해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현재 회장이 경험했던 “대머리다”라는 아이들의 말과 ‘탈모라고 하면 남성형 대머리를 생각하기 쉽다’는 그의 지적은 적어도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사회적 인식 사이의 관계를 한번 생각하게 한다.
특히 건강보험처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어떤 질환과 치료에 우선 사용할 것인가는 당연히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논의에 앞서 최소한 국민이 ‘어떤 질환에 대한 치료인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중증 탈모 환자의 치료’라고 받아들이는 것과 ‘중증 자가면역질환 환자의 치료’라고 이해하는 것은 출발점부터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탈모인뉴스는 하나의 제안을 하고자 한다.
원형탈모의 국내 질환명에서 ‘탈모’라는 표현을 빼는 방안을 의료계가 논의해 보면 어떨까.
어떤 이름으로 바꿀 것인지를 지금 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자가면역 모낭질환’, ‘자가면역 모낭증’처럼 질환의 특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여러 표현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실제 질환명은 의학적 정확성과 국제 질환분류, 환자와 의료진의 수용성 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그 일은 피부과 전문의와 관련 학회, 연구자 그리고 환자들이 함께 논의해야 할 영역이다.
탈모인뉴스가 제안하고 싶은 핵심은 새로운 이름의 정답이 아니라, 이제는 ‘탈모’라는 단어를 반드시 이 질환명에 남겨두어야 하는지 한번 논의를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질환명을 바꾼다고 원형탈모 환자가 겪는 어려움이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치료비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치료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름은 사람들이 질환을 처음 만나는 출발점이다.
과거에는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질환도 의학의 발전에 따라 질환에 대한 정의와 분류, 사회가 사용하는 표현이 달라져 왔다.
원형탈모 역시 이제 단순히 ‘머리카락이 빠지는 모습’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많아졌다.
면역체계가 모낭을 공격하는 질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 면역반응을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가 사용되고 있으며, 중증 환자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을 통한 치료도 시작됐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질환을 부르는 언어도 한번쯤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주현재 회장을 보고 “대머리다”라고 했던 아이들에게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보였고,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그 아이들의 시선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앞으로 이 질환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우리의 언어인지도 모른다.
자가면역질환인 원형탈모에서 이제 ‘탈모’라는 이름을 빼보면 어떨까.
어떤 새로운 이름이 가장 적절한지는 의료계와 환자들이 함께 논의하면 된다.
이제 그 논의를 시작해볼 때다.
최영훈 편집장(medchoi@naver.com)